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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기 도입은 여러가지 면에서 '갈라파고스'라고 할만한 구석이 많습니다.

이유가 뭐가 됐건, 다른 나라들의 상황과는 이상하게 다른 길로 가면서 이해하기 힘든 무기를 도입하는거죠.

그 중 하나가 바로 2006년에 채택된 06식 총류탄입니다.

일본 자위대의 06식 소총척탄(총류탄). 89식 소총에 끼워진 상태입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총류탄과 유탄발사기

군에 다녀온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우리 보병분대에는 유탄발사기가 있습니다.

미군이야 당연히 비슷한 유탄발사기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나라가 유탄발사기를 쓰고 있죠.

유탄발사기가 없는 나라들의 경우 총류탄이라는걸 씁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소총의 총구에 꽂아서 발사하는 폭탄이죠. 보통 총에 공포탄의 일종인 '탄약통'을 꽂아서 쏘지만, 1980년대부터는 그냥 실탄으로 쏴도 발사되는 총류탄도 여러 종류 등장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 나라의 K2도 총류탄을 쏘려면 쏠 수 있습니다. 총구 지름이 22mm라 NATO규격의 총류탄을 끼울 수 있거든요. 필요를 별로 못 느껴서 안 쓸 뿐이지.

이론상으로만 보면, 총류탄은 꽤 매력적인 무기입니다. 어느 소총이건, 총구 규격만 맞으면 총류탄을 쓸 수 있으니까요. 유탄발사기처럼 발사기가 달린 총만 쏠 수 있는게 아닙니다. 한마디로 모든 분대원이 이론상 유탄수가 될 수 있는겁니다. 게다가 유탄발사기에 비해 탄이 비교적 커지니까 위력도 좀 더 세고요.

하지만 그 외의 장점은... 별로 없어요. 탄이 크고 무거우니 탄 휴대량도 적고, 그 외에도 단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거든요. 발사속도는 느리고, 반동은 엄청나고, 사거리는 짧고, 명중률은 낮고, 총류탄을 꽂아놓은 동안에는 소총으로 쓸 수도 없고요.

유탄발사기가 달리면 무거워진다고 하지만, 총류탄은 꽂아놓은 상태라면 앞이 너무 거추장스러워지는데다 꽂은 상태에서는 총류탄을 쏴 날리거나 뽑아내기 전 까지는 소총으로서 활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고 말입니다.

자. 그래서 1990년대까지 미국식 유탄발사기를 안 쓰던 나라들도 2000년대에 이르면 하나둘씩 항복(?)합니다. 점점 유탄발사기가 총류탄을 밀어내고 대세화되는 추세인건 사실이고, 이스라엘처럼 둘 다 쓰는 나라도 있고. 한가지 분명한건 실전경험이 많은 나라들이 대체로 유탄발사기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런 유탄발사기가 점점 대세가 되는 추세입니다.

(사진출처: 미 해병대)


유탄발사기도, 총류탄도 없던 일본 89식 소총

자. 그런데 이웃 일본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2000년대까지 둘 다 없다시피 했습니다. 

아주 없던건 아닙니다. 1960년대부터 사용한 구형 소총인 64식 소총에는 총류탄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64식 소총의 뒤를 잇는 89식 소총은 맞는 총류탄이 없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64식 소총용 총류탄을 꽂아 쏠 수는 있는데, 문제는 89식 소총에는 총류탄 발사용 탄약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2000년대가 될 때까지 89식용의 총류탄과 유탄발사기를 개발하거나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없었고 말이죠.

그런데 64식 소총은 점점 89식으로 대체되어 사라져가니, 육상자위대의 보병분대는 소총이 신형화되면서 분대전투력은 오히려 낮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집니다. 총류탄이 없어지니 말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갈라파고스 소리 듣기는 충분합니다. 보병분대에 유탄발사기도 총류탄도 없으니 말이죠.

결국 2002년, 일본은 89식 소총용 신형 총류탄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도 '갈라파고스'라는 소리 듣기에 딱 좋은 부분이죠.


파편이 튀니 안된다?

일본은 원래 89식 소총용 총류탄은 해외에서 도입할 생각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나 벨기에, 프랑스등 많은 나라에서 소총 총구에 곧바로 끼워서 실탄으로 발사할 수 있는 총류탄을 여러 종류 만들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 때문에 일본은 프랑스나 벨기에등에서 총류탄을 수입해서 테스트를 해 봤는데, 성능은 전체적으로 좋게 나왔습니다만.... 한 가지 결함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총류탄의 주류는 '불릿 트랩', 즉 실탄을 쏴도 내부에 박혀 관통되지 않는 구조가 내부에 들어있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쏘면 뒤쪽으로 작은 파편이 날아간다, 그러니 위험하다... 이게 일본 자위대측에서 발견한 '결함'이라는거죠.

뭐 이론상으로야 맞는 이야기죠. 총류탄 뒤꽁무니에서 파편이 사수쪽으로 날아간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진짜 결함인지, 아니면 생트집인지 굉장히 애매하다는겁니다.

사실 불릿 트랩 방식 총류탄은 나온지 꽤 오래된 물건입니다. 일본이 테스트하던 2000년대 초반 시점에서도 등장한지 20년이 넘어 장단점이 다 파악된지 오래인거죠. 그런데 지금까지 도입해서 운용한 나라들 중 이 방식에서 '파편이 튀니 그대로는 위험하다'며 도입 안한 나라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을 뺀 모든 다른 나라들은 이 정도면 별 문제 없다고 판단한겁니다.

그러나 뭐가 어쨌든, 자위대는 이 문제 딱 하나를 구실로 '총류탄은 안전한걸 직접 개발해야 한다'며 결정해버렸고, 에어컨이나 화공약품등으로 유명한 '다이킨'에서 4년간 만든 끝에 정말 뒤로 파편이 튀지 않는 신형 총류탄인 '06식 소총척탄'이 등장합니다.

06식은 세계최초로 실탄이 박히는 부분이 발사시에 분리되면서 후방으로의 파편비산을 막고 운운.... 등등으로 자화자찬이 대단합니다만. 일본 외에 이런 방식을 채택한 나라가 없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성능은 별 차이 없는 총류탄 가격이 외국제에 비해 많이 비싸진 것은(최소 몇배는 된다고 알려졌습니다) 덤이겠죠.


왜 유탄발사기를 외면했을까.

따지고 보면, 유탄발사기를 결국 외면하고 총류탄으로 간 과정도 그닥 석연치는 않습니다.

자위대가 89식 탑재를 위해 유탄발사기를 검토했을 때, 이들이 지적한 장점과 단점 자체는 다른 나라들이 지적했던 것들과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명중률과 사거리, 발사속도나 탄 휴대성은 좋은데 총이 무거워지고 유탄발사기를 단 총만 유탄을 쏠 수 있고 등등.... 그런데 2000년대 초반이면 막상 다른 나라들이 이미 실전을 통해 유탄발사기의 효용은 확인하고 총류탄의 단점도 충분히 느낀지 한참 뒤인데, 이런 사례는 어디로 잡숴드셨는지 묘하게 단점만 부각되면서 총류탄으로 가버린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소총 하나만 해도 우리 돈으로 300만원이 넘는 자위대의 엄청난 납품가로 유탄발사기까지 납품하려면 예산이 남아나지 않았겠냐는 우려부터, 총류탄을 만든 다이킨측의 로비 아니냐는 주장, 89식 소총이 실제로 내구성이 약해 유탄발사기를 달고다닐 수 없다는 주장 등 주장들이 난무합니다만 어느것도 확인은 안됐습니다(그 정도로 내구성이 약하면 총류탄 발사반동은 어떻게 견딜지도 의문이고 말이죠).

다만 이유가 무엇이건, 일본 자위대의 무기 납품 프로세스가 해외의 추세나 실전사례등과는 전혀 별개로 지독하게 관료적으로 흐른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 다른 나라들과는 이상하게 다른 '갈라파고스화'가 이뤄진다는 것 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일본도 최근 편성된 '특수작전군'에서는 M4카빈과 여기에 맞는 유탄발사기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진짜 실전적인 부대는 결국 유탄발사기를 쓴다는 이야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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