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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테러 훈련시범을 보이는 특전사 대원들. 기사 내용과는 무관. 사진: 홍희범)



지난주,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은 ‘당신은 부하들의 죽음을 잊었습니까’라는 기사를 올렸다. 기사 내용은 간단하다. ‘참군인’으로 칭송받은 전인범 예비역 중장이 ‘사실은 두 명의 부하를 죽음으로 몰아간 당사자’라는 것이다.

불행한 이야기지만, 이 기사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사실을 적잖이 왜곡하고 있다. 두 특전사 대원의 사망이라는 비극, 그리고 그 비극이 전인범 중장의 지시로 이뤄진 훈련에 의한 것이라는 두 사실을 가지고 마치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전 중장이 ‘무책임하게’ ‘이상한 훈련을 밀어붙여’ 두 대원의 죽음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분명 당시 벌어진 사건은 비극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토대로 ‘목숨이 오고가는 전쟁터에서 부하를 덧없이 죽이는 판단을 내리는 지휘관은… 자격미달입니다’라며 당시의 전인범 사령관을 매도할 수 있을까. 


포로극복 훈련과 특전사 대원 사망

혹시라도 당시 사건의 상황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당시 상황을 간단하게 적어보자. 2014년 4월,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전인범 장군은 특전사에 ‘포로극복 훈련’을 실시하라고 지시한다. 말 그대로 적에게 포로가 되었을 때 살아남아 귀환할 능력을 키우는 훈련인데, 그로부터 5개월 뒤인 9월 2일에 13공수특전여단에서 이 훈련이 실시되었다.

문제는 5인 1조로 실시된 이 훈련에서 2명의 사망자와 1명의 부상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사망 원인은 질식. 당시 훈련 내용은 머리에 밀폐된 천주머니를 씌우고 양손을 결박한 뒤 무릎을 꿇리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이들이 사용한 천주머니가 공기가 통하지 않는 폴리에스터제 신발주머니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포로 역할을 맡은 대원(하사)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지만 이것도 훈련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교관들은 훈련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질식증세가 너무 분명히 나타나자 병원으로 급히 후송했지만 너무 늦어 결국 2명이 사망하고 만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전인범 전 사령관의 지시가 사망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게다가 임 소장이 쓴 기사에는 이 명령이 지휘관들과 함께 영화 ‘브라보 투 제로’를 보다가 느닷없이 내려진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단지 이 사건이 ‘즉흥적인 명령으로 인한 무책임한 비극’으로 매도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군 특수부대의 포로극복 훈련. 출처: sfahq.com)



단순한 ‘괴롭힘’이 아닌 훈련

먼저 포로극복 훈련은 미국등 해외의 주요 특수부대들에서 필수 훈련인 SERE(Survival, Evasion, Resistance and Escape), 즉 ‘생존, 회피, 저항, 탈출’훈련에 대부분 포함되는 중요한 과정이다. 실제 적군 포로가 되었을떄 가해지는 심리적-신체적 압박을 극복하고 가능하면 탈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전 상황에서 정말 포로가 되거나 적지에 고립되는 상황이 되어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훈련이 목적이다 보니 모의 고문이 가해져도 정말 참가자가 부상을 입을 정도로 가해지는 일은 없고, 경험 많은 교관단이 잘 모니터링하는데다 참가자가 못 견디고 중지를 요청하면 얼마든지 중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사실 우리 특전사도 과거에는 포로 극복/고문저항 훈련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80~90년대에 실시된 이 훈련들은 성격이 변질되어 일종의 괴롭히기식 통과의례 -쉽게 말해 진짜 고문- 가 되어버렸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참가자가 중지하겠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멈추지 않고, 오히려 중지를 요청한 당사자는 부대에 복귀해 ‘그것도 못 버티냐’며 가혹한 얼차려까지 받았다고 한다. 2004년에 이 훈련이 완전히 중지된 것도 이 때문이다.

(추가: 어떤 분의 제보에 의하면 실제로는 2010년대 초반까지도 특교단에서 훈련의 명맥이 이어져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훈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변질시켜서 그렇지, 포로극복 훈련은 제대로만 이뤄지면 매우 유용한 훈련이다. 영국의 SAS나 미국의 델타, 네이비 씰 같은 쟁쟁한 특수부대들이 모두 SERE코스에 이것을 포함시키는 이유가 있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목숨을 건사하고 살아서 돌아올 능력을 키우는데 매우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명령이 아니다

전인범 중장이 당시 이 훈련을 재개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임 소장은 영화를 보고 내렸다고 하지만, 필자는 생각없이 영화 보다가 툭 던진 명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당초 영화 ‘브라보 투 제로’자체가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실전 체험, 특히 특수부대원의 실제 포로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실제 특수부대원들도 참고할 부분이 많은 작품인 만큼 설령 이 영화를 보고 이런 명령이 내려졌다 해도 간단하게 비난할 부분이 아니다.

게다가 실제로는 이 훈련에 대한 명령이 영화를 보고 갑자기 떨어졌다는 것도 사실과는 꽤 다르다. 일단 전인범 전 사령관 자신이 미국및 영국의 특수부대 훈련 내용에 도통한, 특전사 역사상 흔치 않은 ‘실무진보다 더 해박한 사령관’이라는 점부터 감안해야 한다.

당시 전인범 전 사령관은 특전사 개혁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특전사가 실전을 고려하기보다는 타성에 젖어 기존의 훈련과 전술교리를 고민없이 반복하는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기존의 비실전적 관행을 혁파하고 최대한 실전 우선의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SERE과정을 강화하고, SERE의 필수 코스중 하나인 포로 극복을 재도입하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사령관이 영화를 보면서 ‘툭 던진’ 명령이 아니고, 실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토의하던 중 예하 여단장들이 건의해서 채택된 훈련이었다고 한다. 즉흥적으로 위에서 떨어진 명령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필요하다고 느껴서 올라온 의견이 반영된 명령이라는 이야기다. 이것부터가 임태훈 소장의 주장과는 상당히 배치된다.



(영화 브라보 투 제로의 배경이 된 SAS대원들의 실제 사진. 브라보 투 제로는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실전경험을 토대로 만들어 실제 특수전에도 참고할 부분이 적지 않은 영화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준비가 부족했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이 명령이 막상 실무진에서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것도 아니고, 머리에 뒤집어씌우는 주머니를 공기도 안 통하는 주머니로 준비했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처구니 없는 희생이 되어버렸지만, 이 사건으로 전인범 전 사령관을 간단하게 ‘부하를 덧없이 죽이는 판단을 내리는 지휘관’으로 매도할 수 있을까. 

일단 임태훈 소장이 지적한 ‘준비기간이 짧다’는 부분부터 다소 어폐가 있다. 5개월의 준비기간이 과연 그렇게까지 짧은 기간이었을까. 게다가 13여단에서는 사령부의 최종 승인이 나기 전에도 자체 연습을 하고 있었다니, 전체적인 준비기간은 5개월보다 더 길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포로체험 훈련이 중단된지 10년이나 되었고 경험자가 없다고는 했지만, 이것이 엄청난 설비나 첨단기술, 다수의 인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여기에 관련된 체험담등은 이미 2014년 시점에도 인터넷등에 많이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주한미군 내에도 이 훈련을 겪은 인원이 한둘이 아니다! 실무진들이 조금만 더 이 훈련을 준비하는데 진지하게 임했다면, 경험이 부족했다 해도 이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예산이 부족해 신발주머니를 썼다’는 주장 역시 어폐가 있다. 공기가 통하는 천주머니가 ‘예산이 부족해 못 살’정도로 비싼 물건이란 말인가. 실제로 포로극복 훈련에 대해 당시에 사령관에게 예산이나 시간의 부족이 호소된 일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이 사고의 배경에는 당시 유부남이던 책임교관이 내연녀와 수십분이나 전화통화를 하면서 훈련상황을 모니터하기는 커녕 후배 교관들이 상황이 심상찮다는 보고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훈련현장 자체에는 어떨지 몰라도 훈련은 영내에서 진행됐고, 의료진이 대기하지 않았다는 임태훈 소장의 주장과 달리 영내 군의관은 겨우 5분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서의 잘못된 대처가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최소한 이 훈련은 입안 단계에서는 과거의 ‘괴롭히기’ 위주의 훈련과 달리 본연의 훈련목표에 맞춰 프로그램을 짜고 참가자가 도저히 버틸 수 없으면 중단한다는 원칙 자체는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를 주관하는 책임교관이 자신의 책임을 잊어버리고 불륜에 몰두하다 두 생명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당시의 상황은 빼놓고 모든 책임을 사령관에게 돌리는 것이 과연 맞을까.



(설한지 침투시범을 보이는 특전사 대원들. 기사 내용과는 무관. 사진: 태상호)


전쟁터에서 부하를 살리기 위해

만약 전인범 사령관이 이 훈련을 정말 세부까지 잘 점검했다면 이런 사고가 벌어지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보병부대의 분대장이나 소대장, 아니 중대장도 아닌, 7개 특전여단을 지휘하는(심지어 훈련이 벌어진 13여단의 소재지는 사령부가 있는 서울도 아니었다) 사령관이 이런 훈련의 세부까지 다 챙기는 것은 어렵다. 비록 그 지시가 결과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데 따른 도의적 책임은 있을지 몰라도, ‘이상한 훈련을 밀어붙였다’고 매도하는 것은 무리다. 애당초 그 이상한 훈련이 세계 각국 주요 특수부대의 필수 훈련코스중 하나라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게다가 이 훈련 지시가 ‘목숨이 오고가는 전쟁터에서 부하를 덧없이 죽이는 판단’이라는 주장에 이르면 본말전도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포로체험 훈련은 오히려 전쟁터에서 덧없이 죽는 부하를 하나라도 줄이려는 것이다. 오히려 비교적 최근까지도 적의 포로가 된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던 군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포로가 되더라도 살아서 돌아오는’훈련을 지시한 전인범 장군의 태도는 주목할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애당초 전인범 예비역 중장 본인도 “전우를 잃은 사고는 가슴 아프지만, 여기서 개혁을 멈춘다면 적이 이름만 듣고도 벌벌 떨었던 세계 최강의 특전사의 모습으로 돌아갈 없을 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다고 해도 훈련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쪽이 실전에서 덧없이 죽는 부하를 하나라도 더 줄일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자신이 한 말을 사령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철저하게 지켰다. 특전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고에도 불구하고 전인범 전 사령관 재임시의 특전사가 최소한 그 이전의 특전사보다 전쟁에서 덜 죽고 더 살아 돌아올 확률이 높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무리 비극적 사고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 사고를 가지고 ‘이상한 훈련을 밀어붙인… 부하를 덧없이 죽이는 판단을 내리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전인범 전 사령관을 매도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살펴보지 않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감정적인 지적일 것이다.


(월간 플래툰 편집장 홍 희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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